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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 일은 계속 잘 끝내는데 이상하게 허무함을 느끼는 사람
‘해야 할 일’ 리스트가 끝나지 않아도 계속 무언가 할 일을 만드려는 사람
진짜 중요한 목표를 이루고 성과를 내는 것 보다 남들에게 바쁘게 보이는 데 더 신경을 쓰는 사람
완벽주의, 일중독, 감정 회피형 루틴을 구별하고 싶은 사람
바쁘게 사는 내가, 왜 이렇게 공허할까?
“오늘도 바빴다.” 매일 그렇게 하루를 정리하지만, 정작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수많은 일을 해냈고,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책상 앞에서 한순간도 쉬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허전하다. 스스로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 있다는 느낌’은 점점 희미해진다. 이것이 바로 ‘생산성 중독’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생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바쁘게 사는 모습을 스스로에게 강요한다. 하지만 일 잘하는 척에 익숙해질수록, 진짜 나다운 루틴은 멀어진다. 이 글에서는 겉으로 보기엔 성실하고 똑똑해 보이지만, 내면은 피로와 회피로 가득 찬 ‘생산성 중독’의 심리를 풀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중독에서 벗어나 ‘나답게 일하고 사는 법’을 함께 고민해 볼 것이다.
1. 일이 많아서가 아니다. 멈추는 법을 잊은 것이다
생산성이라는 단어는 분명 긍정적인 의미로 여겨진다. 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할 일을 끝내며, 정돈된 루틴 속에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런데 언젠가부터 ‘생산성’은 피로와 허탈감을 동반한 단어가 되었다. 할 일은 줄지 않고, 오늘도 분명히 많은 일을 해냈지만, 이상하게 성취감이 없다. 오히려 몸은 더 지치고, 감정은 무기력해진다.
이것이 바로 ‘생산성 중독(Productivity Addiction)’의 초기 증상이다. 일 자체보다, 일하고 있는 ‘모습’에 더 중독되는 상태. 실제 성과보다 ‘바쁘게 보이는 상태’에 자신을 몰아넣는 것이다. 이 중독은 우리가 생각하는 완벽주의, 성실함, 책임감과 매우 비슷한 외양을 지녔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스스로도 잘 인식하지 못한 채, 오히려 더 많은 일을 하며 자기 피해를 반복하게 된다.
2. 생산성 중독의 본질: 감정 회피를 위한 위장된 몰입
왜 사람은 끝도 없는 할 일에 스스로를 몰아넣는 걸까? 많은 경우, 진짜 이유는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슬픔, 외로움, 공허함, 자기 의심 같은 감정은 너무 복잡하고 불편해서 마주하기 어렵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을 계속 추가한다. ‘지금 이걸 해야 하니까’라는 명분은 감정을 미루는 데 매우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이런 사람들은 일과 감정을 철저히 분리하려 한다. 일이란 무조건 실행해야 하고, 감정은 나중에 다뤄도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이 억눌릴수록 몰입은 흐트러지고, 집중은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우리는 감정 에너지를 쓰지 않고는 지속 가능한 몰입을 만들 수 없다. 생산성 중독자는 이 간극에서 계속 무너진다. 더 많은 일을 하려 하지만, 실제로는 점점 더 효율이 떨어지고, 삶의 밀도는 낮아진다.
3. 바쁘게 보이는 루틴이 자아를 갉아먹고 결국 성장하지 못한다
할 일 리스트를 끝도 없이 늘리며 성취감을 추구하지만, 그 리스트 속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거의 없다. 대신 남들이 보기 좋은 일,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는 일, 혹은 반복적으로 쉽게 완수할 수 있는 일들로 채워진다. 이는 곧 ‘생산성의 착시’를 만든다. 매일 많은 일을 해낸 것 같지만, 정작 삶이 나아간다는 느낌은 없다.
이런 루틴 속에서는 점점 자아감이 약해진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는 흐려지고, 단지 해야 할 일에 나를 맞추는 사람이 된다. 인간은 ‘목표를 향한 의미 있는 움직임’에 감정적 보상을 느낀다. 그러나 단순한 반복은 우리에게 방향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바쁘면서도 허무한, 열심히 살았는데도 공허한 감정이 반복된다. 그것이 생산성 중독이 자아를 갉아먹는 방식이다.
4. 해야 할 일중독: 진짜 ‘중요한 일’을 미루고 다른 일부터 잡는 심리
생산성 중독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중요한 일을 자주 미룬다. 보고서, 일정 관리, 메일 정리, 서류 제출 같은 업무들은 빠르게 처리하지만, 정작 인생의 핵심 가치와 연결된 ‘어려운 일’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이는 두려움 때문이다. 중요한 일은 실패할 가능성이 있고, 감정이 요구되며, 결과가 불확실하다. 그 불안 앞에서 우리는 반복 가능한 작은 일들로 도망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우선순위 회피(priority avoidance)’라고 부른다. 더 중요한 일을 미루는 이유는 게으름이 아니라 감정적 회피다. 생산성 중독은 이 회피를 합리화한다. “일단 이것부터 끝내고”라는 말 속에는 감정을 피하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의 목록이 길수록, 정작 인생의 중요한 일은 뒤로 밀린다.
5. 실행을 멈추고 감정을 보는 루틴으로 바꾸기
생산성 중독을 끊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일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우선 ‘감정을 다시 보는 훈련’이다. 지금 내가 무슨 감정 상태에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연습. “지금 나는 뭔가를 끝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나?”,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 일하고 있지는 않나?” 같은 자기 점검 질문이 그 시작이 된다.
그다음은 실행 중심 루틴에서 감정 중심 루틴으로의 이동이다. 아침에 하루 계획을 세우는 대신, 하루 감정을 체크하는 질문을 넣어보자. ‘오늘 어떤 감정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가?’ 같은 질문은 감정을 일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또, 하루 일과 중 한 시간 정도는 아무 성과도 기대하지 않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좋다. 그 시간이 감정을 회복하고 진짜 나를 다시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6. 방향이 성과보다 훨씬 중요한 이유
생산성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방향이 없는 생산성은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진짜 성장은 일의 양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수정할 수 있는 여유에서 나온다. 많은 일을 했다는 사실보다,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워졌는지가 더 중요하다. 깊이 있는 루틴과 내면 성찰을 함께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생산성이라는 이름 아래 감정이 지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일 잘하는 척이 아니라, 진짜 나다운 루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삶은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감정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어야 한다. 그 그릇을 비워내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면, 오늘은 잠시 멈춰도 괜찮다. 멈춤이 방향을 되찾는 시작일 수 있다.
일 잘하는 척을 멈추는 용기가 필요하고 중요하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할 것 같은 일’에 스스로를 얽매곤 한다. 생산성 중독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의 감정을 계속 억압하는 일이다. 일 잘하는 척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처음으로 ‘나답게 사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하루를 무언가로 꽉 채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하루가 정말 나를 위한 시간이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다. 감정 없는 몰입은 오래가지 못한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존재하는 것 자체로 충분한 날도 있다. 그 여백이 오히려 진짜 창의성과 회복을 불러온다.
이제는 해야 할 일을 쫓는 삶에서, 의미를 선택하는 삶으로 걸어가야 한다. 그 시작은 '일 잘하는 척'이라는 가면을 잠시 내려놓는 데서부터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