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척 하다, 진짜 괜찮지 않게 됐다

– 회복보다 먼저 필요한 건 '감정 멈춤'

 “그냥 괜찮아, 뭐.별거없다.”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아무렇지 않은 날이 더 많다. 누가 물어오면 대답하기 귀찮고, 혼자 속상해도 굳이 털어 놓기 싫다. 어차피 말해봤자 바뀌는 건 없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괜찮은 척'이라는 가면을 점점 익숙하게 쓴다. 그런데, 정말 괜찮지 않다. 문득문득, 사소한 말에 울컥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갑자기 눈물이 난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부서지고, 그걸 너무 오랫동안 감추며 살아왔다. 언제부턴가 "감정 표현"은 불편한 것이 되어 인정하지 않으며, “울지 마”는 위로의 말처럼 자리 잡았고, 진짜 마음은 그저 입술 끝에서 멈추곤 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웃고, 내 감정은 내가 정리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이 글은 감정을 숨기고 말하지 않는게 일상이 된 사람, 특히 중년 이후, 스스로 감정을 조절해야만 했던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회복’이란 단어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회복보다 먼저 필요한 건, 감정을 잠시 멈추는 용기다.

1. "괜찮아요"라는 말 속에 감춘 감정의 무게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말한다. “괜찮아요.” “그냥 그래요.” “별일 없어요.” ' 에이, 뭐 다들 그렇게 살잖아요" 이 말들은 자기 보호의 언어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감정 표현을 중단하는 습관이 되기도 한다. 특히 40대 이후, 일과 가족, 인간관계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 중년은 감정을 드러낼 시간도, 여유도, 대상도 점점 줄어든다. 자녀는 점점 자신의 세계로 멀어지고, 부모는 더 이상 기대기 어려운 존재가 되고,
배우자와는 일상적인 말만 오갈 뿐 감정 대화는 사라진다. 그러다 보니 ‘감정을 꺼낸다’는 행위 자체가 점점 부담스럽고 어색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괜찮은 척’을 선택한다. "누가 내 속을 들여다보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우리의 마음 속 감정은 표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저 안쪽 한 구석에 쌓이고 있을 뿐이다.

2. 멈추자. 멈추지 않으면, 회복은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이 “회복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회복은 감정의 고속도로 위에서 달리는 상태로는 불가능하다. 회복은 ‘정지’에서 시작된다.그리고 그 정지는 감정을 멈추는 시간에서 가능해진다. ‘멈춘다’는 건 감정을 억누르거나, 외면하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이 무슨 색깔인지, 어떤 온도인지 바라보는 것이다. 사례를 하나 보자. 김선주(가명, 52세) 씨는 평소엔 누구보다 밝고 긍정적인 편이다. 모임에서도 분위기를 띄우고, 직장에서도 후배들 챙기고, 가족에게도 웃는 얼굴을 보인다.그런데 집에 돌아와 불 꺼진 거실에서 갑자기 숨이 막힐 듯한 허전함에 눈물이 난다. 이건 '회복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계속 괜찮은 척을 하느라 내 감정을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계속 흘러가는 강물은 언젠가 방향을 잃는다. 한 번은 멈춰야 물이 흐르던 자리, 그 아래 감정이 얼마나 말라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3. ‘감정 멈춤’이라는 루틴이 필요한 사람들
 "괜찮지 않은 감정"을 회복하려면 그 전에 필요한 건 일시적인 감정 멈춤 루틴이다. 이 루틴은 화려한 명상법도, 긴 시간의 휴식도 아니다.
단 3분이면 충분하다.
 감정 멈춤 루틴 ①
 "지금,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지?" 감정에 이름 붙이기.  예: 허전함, 분노, 피로, 고독, 외면당함
단어를 머리로 떠올리는 게 아니라, 입 밖으로 조용히 말해보기

 감정 멈춤 루틴 ②
 "지금, 이 감정은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예: 가슴이 먹먹해, 배가 답답해, 어깨가 무거워
몸의 반응을 인식하면, 감정이 더 이상 머릿속에서 맴돌지 않는다

 감정 멈춤 루틴 ③
 "이 감정, 지금은 흘려보내지 말고 그냥 두자" 억지로 털거나 정리하지 말고, 그냥 바라보는 연습
감정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봐 주는 시선에 위로받는다

 이 3단계만으로도 감정을 회복하려 애쓰는 대신, 감정과 함께 존재하는 연습이 가능해진다.

4. 우리는 너무 오래 괜찮은 척을 해왔다
 괜찮은 척은 관계를 망치지 않으려고 시작된다. 하지만 결국은 나 자신과의 연결을 끊어버린다. 사람들은 괜찮은 사람을 좋아한다.
웃는 얼굴, 무던한 말투, 친절한 태도. 하지만 내 안에서는 늘 ‘누구에게도 말 못 한 진짜 마음’이 버티고 있다. 감정은 이해받지 못하면 고립되고, 고립된 감정은 결국 나를 외롭게 만든다. 그래서 ‘괜찮은 척’을 멈춘다는 건 누구에게 약해 보이겠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는 나 자신을 중심에 두겠다는 결단이다.

 

 감정이 무너지는 순간은 화가 치밀어 올라오거나, 울거나 폭발하는 때가 아니다. 계속 나 자신을 속이며 괜찮은 척을 하다가, 진짜 괜찮지 않아졌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그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복이 아니라 ‘멈춤’이다. 감정을 정리하려 애쓰기 전에, 그저 감정이 머무는 시간을 주는 것. 그게 진짜 회복의 첫걸음이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지침과 허무함은 아주 오랫동안 억눌러온 감정이 보내는 정직한 신호일 수 있다. 당신은 괜찮은 척을 잘 해낸 게 아니라,
사실은 지나치게 버텨온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제 그 감정에 자리를 내주자. 정리하지 않아도 괜찮고,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도 괜찮은 척했던 하루였다면 지금 이 글을 읽고 나서 그 말 한 번만 마음과 생각 속에서 빼보자. “사실, 나… 오늘 좀 힘들었어.”
그 말이, 진짜 회복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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